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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여성 노숙인, 쉼과 존엄을 위한 제안

01210na 2025. 5. 1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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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뒤늦게 알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3년 3월 서울역 인근에서 여성 노숙인이 사망한 사건인데, 이 여성 노숙인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무려 4시간 동안 300번의 폭행을 당하고 사망했다는 너무 무섭고 잔인하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어요.
그 사건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KBS 1TV <시사기획 창> '길에서 여자가 살았다'편도 시청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숙인에 대한 인식, 제도, 성별에 따라 다른 노숙의 계기, 여성 노숙인이 처한 위험한 환경 등 다양한 면에 대해 살펴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성 노숙인의 경우, 단순히 ‘집을 잃었다’는 의미를 넘어, 폭력으로부터의 탈출이 거리 생활의 출발점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남성 노숙인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많은 여성 노숙인은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기 학대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끝에, 보호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거리에 내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서비스의 부재, 특히 성인지적 접근이 부족한 복지 시스템이 이들의 삶을 더 취약하게 만듭니다. 결국 거리에서조차 다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며, 앞서 언급한 안타까운 사건처럼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기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남성 노숙인은 실직, 사업 실패, 가족 해체 등의 경제적·사회구조적 요인이 주요 원인입니다. 이들도 물론 거리에서의 삶은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이 경험하는 구조적 폭력과 성적 위협은 다르면서도 더 깊은 복합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여성 노숙인을 위한 전용 쉼터 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전국에 1곳(서울)뿐이며, 수용 인원도 20명 남짓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노숙인 보호 시설이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시설 내에서조차 신변의 위협이나 성적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니 여성 노숙인 전용 쉼터의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합니다.



1. ‘자율성 보장형’ 캡슐형 쉼 공간

기존 쉼터는 시설 내 규칙, 공동생활 등으로 거리에서의 생활에 오랜 기간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통제 당하는 느낌을 들게 할 수 있고, 여성과 남성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동거 공간의 경우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캡슐호텔 형 쉼 공간을 제안합니다.
• 체크인/체크아웃 시간은 하루 최대 8~9시간으로 제한
• 간단한 절차로 QR코드/카드 등 발급 받아 자율 체크인 가능
• 최소한의 공간이지만 개인 공간 보장, 청결 유지, 심리적 안정성 확보
• 등록 절차 최소화하여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쉼터 접근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도 ‘중간지대’ 역할 가능

QR코드/카드 등의 발급은 무료급식소 또는 정해진 시설 이용 시 간단한 정보 등록 후 지급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QR코드/카드는 캡슐형 쉼 공간의 출입권이 되며, 이를 통해 노숙인 수, 분포, 패턴 등을 데이터화하여 지역별 맞춤 지원으로 연계할 수 있습니다.
• 1인 하루 1회 발급으로 중복/악용 방지
• 공간 내 홍보물 등을 통해 상담, 자립 프로그램 등으로 유도

이런 공간이라면 쉼터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거리의 여성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데이터 수집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무료 부인과 진료소의 설치

가임기 여성에게 청결 유지가 어렵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건강의 위협입니다.
질염, 요로감염, 생리 불순 등 몸의 고통이 삶의 절망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의료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여성 노숙자가 많은 지역에 부인과 무료 진료소 설치
• 이동진료버스나 지역 내 고정형 부인과 진료소 운영
• 생리용품, 속옷, 세정제 지원
• 필요 시 트라우마 심리 상담 연계

여성으로서 몸을 돌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거리 위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과 절망에서 탈출한 여성들이 거리에서조차 다시 폭력의 대상이 되는 현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성의 삶, 여성의 몸, 여성의 쉼에 대한 존중이 있는 복지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제가 올린 이 글이, 어딘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작은 시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길 위에서의 삶을 사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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