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을 다루는 언론과 대중의 태도
최근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클릭 수와 조회 수가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 탓인지 언론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내고, 유튜브와 SNS에서는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보도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대중의 불안과 슬픔을 확대시키고, 심지어 모방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연구에서도 자살 보도의 방식이 자살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보도를 소비하며, 때로는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누가 먼저 소식을 접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관련 게시글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는 척하면서도 그 안에서 묘한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가 비판하는 언론과 대중의 소비 방식이 결국 같은 흐름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언론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방식대로 뉴스를 만들고, 사람들은 다시 그 뉴스에 반응하며 더 많은 관심을 유도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단순한 "1차 소비자"가 아닌 "2차·3차 생산자"가 되기도 합니다. 기사를 캡처해 공유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또 다른 글을 쓰고, 자극적인 편집을 가미한 영상을 만들면서도 “나는 언론과 다르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공유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행위가 언론의 보도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씁쓸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개인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집단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이야깃거리"가 되고, "조회수"가 되고, "트렌드"가 되는 순간, 한 사람의 삶과 고통은 "콘텐츠"로 소비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그저 "큰 사건"으로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보도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살을 단순히 "우울증 때문"이라고만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는 일입니다.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는 경제적 문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사회적 압박, 신체적 질병,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언론은 마치 공식처럼 "우울증 → 자살"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버리고, 그 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 해결도 피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이 흐려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원래 우울증이 있어서"라는 식으로 마무리되어 버리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도움이 필요했는지는 묻히게 됩니다. 그러나 실은 사회 전체가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언론이 문제다"라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개개인이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합니다. 하지만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이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도 “이건 정말 필요해서 보는 건가? 아니면 충격적인 정보를 소비하려는 건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할 때, 우리는 조용히 국화를 올리거나 향을 피운 뒤 절을 하고 상주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이 한마디에 모든 마음을 담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애도의 방식마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저 충격을 받았다는 감정적인 표현이 난무하고, 근거 없는 추측이 더해지며, 한 사람의 죽음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치 애도조차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그러나 애도란 본래 조용한 것이어야 하고, 침묵 속에서도 깊이 전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쓸데없는 말들을 덧붙이기보다 묵묵히 애도하는 것입니다. 떠난 이의 삶을 함부로 단정 짓거나 가십거리로 삼지 않고, 그저 그가 남긴 시간과 기억을 조용히 기리는 것입니다. 고인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헤아리는 마음—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정한 애도가 아닐까요?